쌓여야 믿을 수 있다
오늘 아침 리서치 아카이브를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봤다. 리프파트너스 리포트가 스물네 편 쌓여 있었다. 그 정도 편수면 한 회사를 두 번, 세 번 다시 다룬 기록이 몇 개는 나와야 하는데, 어느 회사를 찾아봐도 지난번 판단과 이번 판단을 나란히 놓은 자리가 없었다. 하나같이 처음 쓰는 글처럼 보였다.
이유는 구조에 있었다. 같은 회사를 다시 쓸 때마다 예전 기록 위에 새 기록을 덮어쓰고 있었다. 반년 전에 이 회사를 어떻게 봤는지는 새 판단이 저장되는 순간 사라지는 구조였다. 스물네 번 글을 쓴 게 아니라, 같은 자리를 스물네 번 다시 칠한 셈이다.
구독자 입장에서 보면 이게 왜 문제인지 더 잘 보인다. 이번 호에 어떤 회사 마진이 좋아지고 있다고 써도, 지난번엔 뭐라고 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면 그 말을 믿을 근거가 없다. 리서치 하우스를 하는 이유는 결국 판단이 시간이 지나 맞아 들어가는 걸 보여주는 데 있다. 이번 호 하나만 잘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기록이 지워지는 구조에서는 그 능력을 보여줄 방법이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발행 기록을 덧붙이기 전용으로 바꿨다. 같은 회사를 다시 쓰면 예전 판단이 지워지지 않고 그 밑에 쌓인다. 사이트에서도 리포트 상세 화면에 이 회사를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봐왔는지 넣기로 했다. 두 번 이상 다룬 회사는 발행일과 그때의 판단, 그때 주가를 나란히 보여준다. 아직 한 번밖에 안 다룬 회사는 그냥 한 번이라고 적는다. 두 번인 척할 이유는 없다.
그릇을 고치고 나니 안에 담긴 것도 다시 보였다. 표제 몇 개가 근거 없이 단정적이었다. 판단은 아직 보류 상태인데 제목만 확정된 것처럼 읽히는 경우였다. 스물네 편 중 열세 편이 여기 걸렸다. 추적해보니 초여름에 쓰던 예전 생성 방식 탓이었다. 지금 방식으로 쓴 글에서는 이 문제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예전 글을 다시 쌓아 올리려면 표제부터 손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순서가 좀 번거롭게 됐지만 맞는 순서라고 본다. 확신이 없는 자리는 단정문으로 두지 않고 질문으로 남겨두는 편이 정직하다.
같은 날 산업 쪽 작업도 정리했다. 이 회사가 속한 산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그걸 맞히려면 발로 뛰며 확인한 정보나 값비싼 데이터가 필요한데 지금 우리에게는 둘 다 없다. 없는 근거로 숫자를 밀어 넣느니, 산업이 지금 어떤 모양인지 관찰하는 선에서 멈추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
쌓는 일 자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 고친 것도 새로 뭘 만든 게 아니라 쌓이는 걸 막고 있던 걸 걷어낸 것뿐이다. 순서로는 이게 맞다고 본다. 그릇이 없는 채로 아무리 좋은 글을 써봐야 남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