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유보다 안 판 이유였다
오늘 리프파트너스에서 종목 리포트를 채점하는 항목표를 만들었다. 버핏이 실제로 산 이유들을 잣대 삼아 리포트가 제대로 됐는지 판정하는 표다. 문제는 그 잣대를 누가 정하느냐였다.
가장 쉬운 길은 내가 앉아서 "좋은 투자란 이런 것"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며칠이면 그럴듯한 표가 나온다. 그런데 그건 결국 내 생각을 버핏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사람 뽑을 때도 비슷하다. 이상적인 인재상을 먼저 근사하게 적어놓고 거기 맞춰 채용하면, 정작 지금까지 회사에서 잘해온 사람들과는 안 맞는 기준이 나오기 쉽다. 진짜 기준은 실제로 잘된 사례를 뜯어봐야 나온다.
그래서 버핏이 코카콜라, 아멕스, 애플을 산 이유를 서한에서 전수 조사했다. 코카콜라 182곳, 아멕스 117곳, 애플 37곳, 합쳐서 336곳을 하나씩 읽고 판정했다. 채택된 건 85곳뿐이다. 나머지는 매수 이유와 상관없는 일반론이거나 다른 맥락이었다.
여기서 예상과 다른 게 나왔다. 채택된 85곳을 이유별로 나눠보니 가장 많은 축이 "왜 샀는가"가 아니라 "왜 팔지 않았는가"였다. 보유논리가 36곳으로 제일 많고, 브랜드가 19곳,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13곳, 자사주 매입이 10곳으로 뒤를 이었다. 버핏의 서한은 매수 버튼을 누른 순간보다 오래 들고 있어도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훨씬 많은 지면을 썼다. 매수 리포트에 "왜 사는가"만 채점하는 항목표를 만들었다면 이 축을 통째로 놓칠 뻔했다.
이렇게 만든 항목표 16개를 그냥 쓰지 않고, 버핏이 실제로 산 코카콜라·아멕스·애플과 그가 오래 들고 있는 무디스까지 네 종목에 먼저 돌려봤다. 정답을 이미 아는 문제로 채점 기준 자체를 시험한 것이다. 통과율이 유난히 낮은 잣대 두 개가 나왔다. 문턱을 손봐서 억지로 통과시키지는 않았다. 의심 표시만 남기고, 그 잣대가 정말 틀렸는지는 따로 더 봐야 한다.
리프파트너스가 팔아야 하는 건 결국 신뢰다. 숫자가 틀리면 끝이고, 기준이 내가 지어낸 것이면 그 신뢰는 처음부터 없는 것과 같다. 오늘 들인 시간의 대부분은 이 표 하나에 들어갔다. 눈에 띄는 성과는 아니지만, 나중에 리포트를 몇백 개씩 찍어낼 때 이 표가 흔들리면 전부 같이 흔들린다. 지금 손이 많이 가더라도 여기서 제대로 해두는 게 맞다고 본다.